프놈펜 ARF 외교장관회의와 동아시아 안보정세

2012. 8. 7. 08:40캄보디아 개요

프놈펜 ARF 외교장관회의와 동아시아 안보정세

 

지난 7월 9~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19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번 회의에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27개국, 즉 ASEAN 회원국 10개국, 한·미·중·일·러 등 ASEAN 대화 상대국, 북한·파키스탄·몽골·동티모르 등 기타국의 외교장관들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ARF 외교장관회의를 비롯하여 ASEAN 외교장관회의,ASEAN+3 외교장관회의,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메콩우호국 외교장관회의 등 다양한 회의를 개최하면서 지역안보 현안을 심층 논의하였다. 한국도 ARF, EAS, 아세안+3외교장관회의,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한·중 외
교장관회의 등에 참석하면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번 회의의 백미인 ARF 외교장관회의는 7월 12일에 개최되었다. ARF는 신뢰구축조치 증진 및 예방외교 메커니즘 개발을 통해 역내 분쟁을 해결하고 포괄적 안보를 촉진할 목적으로 1994년 ASEAN의 주도 하에 창설되었다. ARF는 아·태지역에서는 최초이자 아·태지역의 주요 국가들이 거의 망라된 유일한 공식적 정부 간 다자안보대화기구이다. 따라서 ARF 외교장관회의는 동아시아 안보정세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에 본고는 우리의 안보문제와 직결된 사안을 중심으로 프놈펜 ARF 외교장관회의를 평가하고 향후의 동아시아 안보정세를 전망한다.

 

ARF 개괄 및 총평
이번 ARF 외교장관회의는 남중국해문제를 둘러싼 참가국들 간의 첨예한 입장 대립으로 공동성명을 도출하지 못한 채 호남홍(HOR Hamhong) 캄보디아 부총리 겸 외교장관 명의의 의장성명 발표로 종결되었다. ASEAN 외교장관회의에서 공동성명이 발표되지 못한 것은 1967년 ASEAN 창설 이후 45년 역사에서 처음이다. 이런 사실이 말해주듯이 이번 ARF 외교장관회의는 가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이번 회의의 내용은 의장성명에 잘 요약·정리되어 있다. 의장성명은 총 37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론을 제외한 4개 분야, 즉 지역·국제 이슈 토론, 지난 1년(2011.7~2012.7)의 활동 검토, 향후 1년의 사업계획, ARF의 진로로 세분되어 있다.
지역·국제 이슈 토론에서는 ASEAN의 역내 통합과 단일시장 실현, 남중국해·한반도의 안보와 안정, 미얀마 민주화, 식량·에너지 안보, 갈등 해결과 관리, ARF와 ASEAN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ASEAN지역 마약퇴치, 시리아 내전, 동티모르 총선 참관단 파견, 아프가니스탄 근황과 발전, 동남아시아 비핵지대와 대량살상무기 금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중동 갈등의 평화적 해결, 자연재해 및 재난구호, 테러리즘 및 국제범죄 대응 등 다양한 의제들이 논의되었다. 지난 1년의 활동 검토에서는 ARF 고위관료회의(ARF SOM), 신뢰구축조치와 예방외교 지원그룹 활동(ISG on CBMs & PD), ADMM과 ADMM-Plus, 11차 ARF 재난구호회의, 4차 ARF 해양안보회의, 4차 ARF 핵비확산·군축회의, 10차 테러리즘 및 국제범죄 대응회의, ARF 활동 관련 각종 워크숍 등의 개최에 대한 보고와 검토가 있었으며, 외교장관들은 이런 활동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향후 1년의 사업계획과 관련하여 외교장관들은 예방외교 활동 진전 및 신뢰구축
증진 지속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재난구호, 테러
리즘과 국제범죄 대응, 핵비확산과 군축, 해양안보라는 4가지 우선 분야의 활동을 지속하기로 했다.
한국은 2013년에 태국과 공동 주최로 4차 ARF 재난구호훈련(DiREx)을 태국에서 개최하고, 인도네시아·미국과 공동 주최로 5차 ARF 해양안보회의(ISM on MS)를 한국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ARF의 진로와 관련하여 외교장관들은 2011년 18차 ARF에서 채택된 예방외교 워크플랜 실행의 진전,예방외교 및 신뢰구축 행동계획 실행의 연례적 검토, 트랙Ⅰ(정부차원)과 트랙Ⅱ(민간차원)의 연계강화 지속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ARF와 ADMMPlus의 시너지 증진 방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상의 내용에서 보듯이 ARF는 지난 1년 동안 역내 국가들 간의 신뢰구축과 예방외교, 비전통안보 강화 등을 위한 다양한 협력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런 협력활동이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번 회의의 참가국들도 이런 협력활동의 성과를 적극 인정하고 협력활동 지속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였다. 그러나 후
술하는 바와 같이 정작 동아시아 안보 불안정의 핵심이슈인 남중국해문제와 한반도문제에 있어서는 협력과 해결책의 한계를 크게 노정시켰다. ARF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맞먹는 수준의 위상을 구축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하다. 오히려 동·서 양진영 간의 각축장으로 변질된 냉전기 유엔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남중국해문제
남중국해문제는 이번 회의의 최대 관심사였다. 중국과 무인도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필리핀과 베트남은 남중국해문제를 초미의 의제로 부각시키고 중국을 압박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양국은 지난 4월 중국과 필리핀 사이에 일어난 스카보러(Scarborough) 섬(중국명: 황옌다오 黃巖島) 해상 대치사태를 ARF 공동성명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무엇보다 양국은 남중국해의 무인도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조정할‘남중국해 행동수칙’(CoC) 제정을 ARF 공동성명 문안에 포함시킬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CoC는‘남중국해 행동선언’((DoC) 및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바탕을 둔 것이다. DoC는 2002년 11월 중국과 ASEAN 10개국이 합의한 것으로 항해와 상공 통과의 자유존중, 영토문제의 평화적 해결, 긴장고조 유발 행동 자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UNCLOS는 1982년에 체결되고 1994년에 발효된 것으로 분쟁지역 내에서 무력사용을 금지할 것, 특정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려면 해당 수역이 자국의 영해나 배타적 경제수역 범위(200해리) 이내에 속해야 한다는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CoC 제정 주장의 근저에는 국제협약의 힘을 빌어 중국의 무력사용 위협 및 무인도 영유권 주장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번 회의의 개막과 더불어 ASEAN 회원국들은 대중국 공동대응의 원칙 하에 CoC 제정이 공동성명에  포함될 수 있도록 협력을 강화할 조짐을 보였다. 클린턴 국무장관도“당사국들이 상호 협력하여 남중국해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강압·협박·위협·무력을 동원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고 중국의 CoC 제정안 수용을 압박하면서 양국의 주장에
힘을 크게 실어주었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ARF 회의에 앞서 몽골, 베트남, 라오스를 방문하여 우호협력을 증진시키고 중국 봉쇄벨트를 강화하는 면모도 보여주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중국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은 여건이 미비된 상태에서 CoC 제정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면서 CoC 제정안의 공동성명 포함을 강력히 거부하였다. 중국은 3자 개입을 불허하고 당사국 간 개별교섭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자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개입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감추지 않았다. 중국은 당사자 해결, ‘구동존이’(求同存異), 평화적 해결이라는 3원칙 하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을 표방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남중국해에 해양감시선 편대와 대규모 어선단을 파견하고 남중국해의 난사(南沙)·시사(西沙)ㆍ중사(中沙)군도를 관할하는 싼사(三沙)시를 설치·가동함으로써 힘에 의존하는 일방적 강경책을 구사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CoC 제정으로 야기될 강경책 구사의 제약, 국제사회의 압력, 영유권 주장의 정당성 약화 등을 크게 우려한 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ASEAN 우방국들을 상대로 회유와 압박 공작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양제츠( ) 외교부장은 남중
국해 자원 개발과 수색·구조 활동을 위한 중국-ASEAN 간 해양협력기금 창설을 제안하고 여기에 중국이 30억 위안(약 5,400억원)을 출자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또한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을 상대로 원조와 차관 제공, 군사지원 등도 약속했다. 중국은 전통 우방국이자 ARF 의장국인 캄보디아에 모종의 압력도 가했다고 한다. 이런 중국의 공작은 즉각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ARF 외교장관회의가 임박해지면서 CoC 제정의 공동성명 명시 여부를 둘러싸고 ASEAN 회원국들은 균열을 크게 노정시키게 되었다. ASEAN 10개국은 무려 나흘간이나 머리를 맞댔지만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필리핀과 베트남은 CoC 제정의 공동성명 명시를 강력히 주장했고, 태국·캄보디아·미얀마·라오스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는 중립 입장을 견지했다. 가장 크게 반발한 국가는 ARF 의장국인 캄보디아였다. 이런 내분으로 결국 CoC 제정의 공동성명 명시는 물론 공동성명 채택마저 무산되고 말았다. ASEAN이 출범 이래 최악의 분열위기를 맞은 것이다. 캄보디아는 필리핀과 베트남에 그 책임을 돌렸다. 이에 격분한 라울 로사리오 필리핀 외무장관은 중국을 맹렬히 비난하는 단독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남중국해문제는 의장성명에서“외교장관들은 2002년 DoC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 이들은 남중국해에서 평화와 안정 지속의 중요성, 모든 유관국들의 자제와 무력 비사용 지속, 1982년 UNCLOS를 포함한 국제법에서 보편적으로 공인된 원칙 존중, 남중국해에서 신뢰구축 증진을 강조했다. 이들은 모든 당사국들이 1982년 UNCLOS를 포함한 국제법에서 공인된 원칙에 따라 남중국해에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라고 명시되었다. 의장국인 캄보디아는 CoC 제정을 명시하지 않고 CoC 제정의 근거로 삼는 UNCLOS의 존중을 명시하는 수준에서 양측의 입장을 절충한 것이
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 때, 남중국해문제는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尖閣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문제와 더블어 향후에도 동아시아의 안보와 안정을 위협하는‘태풍의 눈’으로 남을 것 같다. 사실 무인도 영유권은 유관국들의 핵심 국가이익에 속하는 바 남중국해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번 회의를 통해 미국의 적극적 개입 의지 및 미·중 패권경쟁이 또 다시 부각됨으로써 남중국해문제를 둘러싼 미국 진영과 중국 진영 간의 패싸움·기싸움 양상도 심화될 것 같다.
ASEAN의 분열상이 크게 노정됨으로써 남중국해문제를 위시한 역내 제반 협력활동에 있어서 ASEAN 회원국들 간의 갈등과 파열음도 적지 않게 빚어질것 같다.

 

한반도문제
이번 ARF에서 한반도문제는 남중국해문제에 가려져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반도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과 미국의 공식적 부인에도 불구하고 남북접촉 및 북미접촉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난 4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이후 북핵 대화창구가 닫힌 상태에서 남북한과 미국의 외교수장이 처음으로 조우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ARF를 계기로 북한과의 대화국면 전환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김성환 외교장관과 박의춘 외무상은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고 외면했다.
남북한은 ARF 공동성명에 자국에 유리한 문구가 명기될 수 있도록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국은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해서는 안되고 유엔안보리 결의를 준수해야 하고 진정성 있는 비핵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은 지난 4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가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임을 강조하고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의장성
명에 포함시키는 데 주력했다. 한·미·일은 별도의 3국 외교장관회의를 개최하고 3국의 과장급 실무자들이 참가하는 워킹그룹을 워싱턴에 구성하여 북한의 비핵화와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상호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북한은 장거리로켓 발사는 우주개발을 위한 인공위성 발사 실험임을 강조하고 2.29 북미합의 복원과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
등을 주장했다. 북한은 북한의 핵억지력은 미국의 적대적 대북정책 때문이며 북한은 평화적 우주이용과 경수로 건설, 우라늄농축 등의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의 문건을 언론에 배포하기도 했다. 북한은 과거에 친분이 있었던 ASEAN 국가들에 공을 들이면서 김정은체제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결국 한반도문제는 의장성명에서“외교장관들은 한반도의 평화, 안보,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유관국들이 어떤 추가 도발도 하지 말 것과 유엔안보리결의(1718·1874호) 및 2005년 6자회담 공동성명에 규정된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나아가 이들은 상호 신뢰 분위기 조성을 위해 유관국들이 평화적 대화가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을 거듭 촉구하였다.”라고 명시되었다.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문제와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의장국 캄보디아가 한국과 북한 어느쪽의 입장도 명시적으로 두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 비난여론을 감안할 때, 이런 언급 회피는 결국 북한의 손을 들어준 것과 다름없다. 캄보디아가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처사가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과 중국의 입김, ASEAN 회원국들의 분열, 미·중 패권경쟁 양상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 때, 향후 ARF의 한반도 문제 논의시에도 한국측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실 ARF를 통한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핵문제의 해결은 크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하튼, 북한의 비핵화 이행의지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북핵문제의 해결은 물론 ARF의 한반도문제 논의도 시간과 정력 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의 대응방향
남중국해문제는 단순히 영유권 분쟁 당사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중국해문제로 인한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고조와 미·중 패권경쟁 심화는 북핵문제 및 한반도문제의 해결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남중국해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보다 적극으로 모색해야 한다.
2013년 20차 ARF는 중립 성향의 브루나이왕국이 의장을, 친중 성향의 미얀마가 부의장을 맡게 된다.
이번처럼 한반도문제 논의에서 우리측 입장의 일방적 관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ARF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가 산출될 수 있도록 좀더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외교활동, 특히 ASEAN 회원국들에는 성향별 맞춤형 외교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내년에 우리가 공동 주최하는 4차 ARF 재난구호훈련과 5차 ARF 해양안보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