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2007. 9. 19. 02:01나들이 하기 좋은 명소

  • 창경궁
  • 주    소 : 서울 종로구 와룡동 2-1
  • 전화번호 : 02-762-4868
  • 등급:사적 제123호
  • 홈페이지: cgg.cha.go.kr
  • 관람료:어른(19~64세) 1,000원/청소년(7~18세) 500원
  • 관람시간 : 3월~10월 09:00 ~ 18:00 / ※ 주말, 공휴일은 19:00까지/11월~ 2월 09:00 ~17:30
  • 휴일 : 화요일
  • 기타 : 도보관광코스 | 서울 육백년사
  • 공간소개
    창경궁의 원래 이름은 수강궁으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그 후 성종 14년(1483) 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하여 새로 중건하고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꾸었다. 창덕궁과 함께 동궐이라고 하였는데,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붙어 있으면서 서로 보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동물원과 식물원, 이왕가 박물관이 들어서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격하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1983년 동물원과 식물원을 옮기고 이름도 창경궁으로 되찾았다.
    [창경궁(昌慶宮)의 역사적 배경]
    이 궁은 옛날 고려 때 수강궁(壽康宮) 터로서 세종 원년에 잠시 상왕 태종이 거처한 일이 있기는 하였으나 여기에 본격적인 궁궐이 시설된 것은 성종 14년(1483)의 일이다. 성종은 당시 생존해 있던 조모 정희왕대비(貞熹王大妃, 세조비) · 모후인 소혜왕후(昭惠王后, 덕종비) · 양모(養母)인 안순왕후(安順王后, 예종 계비)를 위해 왕의 정궁인 창덕궁과 가까운 수강궁 터에 새 궁궐을 건조하였다. 그러나 창경궁도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어 광해군 즉위초부터 중수가 진행되어 왔는데, 대간(臺諫)들의 공사 중지 요청이 있었고 또 반역음모설로 인한 옥사가 자주 일어나 일시 공사가 정지되었다. 그러다가 광해군 7년 4월에 왕이 정릉동 행궁(行宮)에서 창덕궁으로 다시 이어(移御)하면서부터 창덕궁 영건의 공사에 다시 착수하였다. 그러자 정원(政院)과 대간에서 재차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는 이 시기에 궁궐을 영선(營繕)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주장이 비등하였는데, 왕은 이를 무시하고 역사를 강행하여 왕 8년(1616) 11월에 이르러 드디어 중수(重修)가 완결되었다. 그 후 인조반정이 있은 다음 반정공신의 1인인 평안병사 이괄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서울이 반군에 함락되자 왕실과 조정은 창황히 서울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이 때 무뢰악소배(無賴惡小輩)들이 왕궁으로 난입하여 물건을 도둑질하고 불을 질러 통명전(通明殿) · 환경전(歡慶殿) · 양화당(養和堂) 등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었는데, 난이 진정된 이후 다시 중수되었다.(1619) 그 뒤 순종 융희 원년(1907) 11월에 왕실의 오락장 · 동물원 · 식물원 등이 궁내에 병설되어 창경궁은 창경원(昌慶苑)으로 개칭되었다. 동년에 원내(苑內)의 권농장(勸農場) 터에 못을 파고 춘당지(春塘池)라 하였으며, 1911년에는 못의 북쪽에 일본식 건물인 수정 (水亭)을 세우고, 이보다 2년 앞에는 그 뒤쪽에 식물원을 설치하여 주로 열대식물을 심었다. 그리고 옛 보루각지(報漏閣址)의 부근에는 동물원을 꾸며서 서울의 명소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현재 동물원과 식물원의 시설은 경기도 과천에 서울대공원이 설치되면서 그곳으로 이전하였으며, 창경궁은 복원공사가 완성되어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지하철]
    4호선 혜화 (4번출구)
    [버스]
    1011, 1018, 1019
    104, 162, 272
    9101, 9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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