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강술래

2007. 10. 1. 11:38전통 놀이

영남·호남 해안지방과 도서지방에 널리 분포된 민속놀이 또는 민요.
강강술래 /강강술래, 영·호남 지방에 널리 ...
강강수월래라고도 한다. 196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목포·무안·해남·영광·장흥·순천·화순 등 해안일대와 완도·진도와 같은 섬에서 성행하였다. 정월 대보름, 8월 한가위와 같은 연중행사 때, 달 밝은 밤 부녀자들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과 노래를 함께 하는 강강술래는 소리춤의 하나로 원무형태(圓舞形態)의 춤이다. 세시풍속과 관련된 점으로 미루어 그 발생을 조선시대로 짐작할 수 있다.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강강수월래(江江水越來)라 하여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사놀이로 창안했다고도 하고, 마한 때부터 전승된 가장 오래된 민속춤의 하나라고도 한다. 또한 달을 맞이하고 추수를 감사하는 의식에서 나왔다고도 하며, 한자어로 의미를 붙여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에서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는 이야기도 있다.
강강술래는 흥(興)과 사기(士氣)를 돋우는 춤으로, 춤이 끝나면 휴식을 취하고 여흥으로 다른 소리춤과 놀이 등을 즐긴다. 놀이의 종류는 지방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좌수영 일대에 전승·연희되는 놀이로는 늦은 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자진강강술래, 남생아 놀아라(남생이놀이), 고사리꺾자(고사리꺽기), 청어엮자(청어엮기), 청어풀자(청어풀기), 기와밟기, 문열어라, 덕석몰이, 덕석풀기, 쥔쥐새끼놀이, 가마등, 도굿대당기기, 수건찾기, 품고동, 봉사놀이 등이 있다. 이같은 여흥놀이에는 담넘기·덕석몰이·고사리꺾자·여물썰기·기와밟기와 같은 농경모의(農耕模擬)의 춤과 남생아 놀아라, 바늘귀 끼기와 같은 성모의(性模擬)의 춤, 청어엮자와 같은 풍어모의(豊漁模擬)의 춤이 있다. 문지기놀이·쥔쥐새끼놀이 등의 군사놀이와 노르시름·행기돌기·콩동방동과 같은 체력단련놀이를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강강술래를 비롯해 여흥놀이로서 소리춤과 놀이를 하면서 밤새도록 논다.
강강술래의 편성은 선도자(先導者)의 앞소리와 춤꾼들의 받는 소리가 융합된 응답식 소리로 연희하거나, 돌림소리꾼의 앞소리와 춤꾼들의 받는 소리로 연희하는 수가 있으며 구성은 원무(圓舞)나 나선무(螺旋舞)로 진행된다. 이밖의 소리품이나 놀이는 원형을 비롯하여 1렬행렬형(一列行列型)·2열대립형·개인놀이형이 있다. 강강술래는 가사의 내용에 따라 그 춤의 성격이 규정된다. 강강술래가 남성 유혹, 여성의 한(恨), 달과의 대화, 풍자, 효도사상, 인정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달에 대한 동경에 있다. 율동적인 면에서는 활달하고 전투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다양한 모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강강술래는 떠는 목, 평으로 내리는 목, 꺾는 목의 3음음계로 이루어진 계면조이다. 이 놀이는 진양조로 하는〈느린(늦은) 강강술래소리〉 또는〈진강강술래〉에 맞추어 원을 그리며 손을 잡고 돈다. 이때 진양조 선소리(진도지방에서는 설소리라 함)로 매기고 '강강술래'라고 받는 소리를 한다. 중모리조로〈중강강술래소리〉를 하면서 손과 발을 맞추어 원을 그리며 걸어간다. 이어서 자진모리조로〈자진강강술래소리〉를 부르면서 손과 발을 힘차게 구르며 뛰고,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이 가운데〈중강강술래〉는 진도지방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강강술래의 놀이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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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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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다. 그러나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임진왜란(壬辰倭亂)과의 연관설이고, 다른 하나는 고대의 제사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전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침략해 오는 왜적에게 우리 군사가 많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부녀자들을 동원하여 남장시키고 손과 손을 마주잡고 둥그렇게 원을 만들며 춤추게 했더니, 이를 본 왜군들이 질겁하여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 설은 학자들에 의해 점차 부정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교과서에는 이렇게 소개되고 있다. 후자의 경우는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濊)의 무천(舞天) 등에서 행해지는 제사의식에서 비롯되었거나, 만월제의(滿月祭儀)에서 나온 놀이라는 것과, 마한(馬韓) 때부터 내려오는 달맞이와 수확의례의 농경적인 집단가무 등 다양한 설이 있다. 강강술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문헌은, 조선 말기 정만조(鄭萬朝)가 쓴《은파유필》이 있다. “높고 낮은 소리를 서로 주고받으며 느릿느릿 돌고 돈다. 한동안 섰다가 이리저리 돌아가네. 젊은 여인들의 마음에는 사내 오길 기다리네. 강강술래를 하니 때맞추어 역시 사내들이 찾아오네. 이날 밤 집집마다 여자들이 두루 모여서 달을 밟으며 노래하는데, 한 여성이 선창을 하면 여러 여성들이 느릿느릿 소리를 받기를 강강술래라 한다.” 강강술래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 한자 기원설로, ‘强羌水越來(강강수월래)’ 즉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으로 풀이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왜적을 경계하라는 뜻의 적개심을 높이려는 구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억지로 한자를 꿰어 맞췄다는 견해가 많다. 다른 설은 우리말 기원설로, 강강술래의 ‘강’은 원(圓)을 뜻하고, ‘술래’는 수레[輪]를 의미하는 말로, 둥글고 둥글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국한문 혼합기원설로, ‘강강’은 우리말 원(둥근), ‘술래’는 순유(巡遊)·순라(巡羅)에서 나왔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전라도 남해안지방의 사투리 ‘강강’은 둥근 원을 만들고 돈다는 뜻이며, ‘술래’는 도적을 잡는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기원과 어원에 대하여 뚜렷이 밝혀진 바가 없고, 다만 추측될 따름이다. 다만 강강술래가 먼 옛날부터 집단의 대동적인 축제에서 시작된 것으로, 주로 분포지역이 해안지방인 점에서 주로 남자들은 오랫동안 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여성들이 마을에 남아 있으면서 달 밝은 밤이면 풍농(豊農)과 만선(滿船)을 기원하는 공동굿 형식으로 발달되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걷기와 뛰기가 주를 이루지만, 중간 중간에 여흥놀이로 멍석말기와 풀기,문지기놀이,남생이놀이,기와밟기,고사리끊기 등이 있다.

1) 가장 중심이 되는 원무(圓舞)는 주로 오른쪽으로(시계 반대방향) 돈다.

2) 손잡기와 걷기: 오른손은 손등이 위로,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가게 옆 사람을 잡는다. 걷기에서의 발은 뒤꿈치부터 노래에 맞추어 딛는다.

<걷기에서 부르는 노래>

달떠온다 달떠온다 / 강강술래 동해동창 달떠온다 / 강강술래
저 - 달이 뉘달인가 / 강강술래 강호방네 달이라고 / 강강술래
강호방은 어디가고 / 강강술래 저달뜬줄 모르는가 / 강강술래
* 강호방은 강씨 성을 가진 호방(戶房;치안을 담당하는 지방벼슬)임.

3) 뛰기 : 걷기보다 빠르게 겅중겅중 노래에 맞추어 뛴다. 다리를 많이 벌리지 않고 무릎을 올리면서 흥겹게 뛴다.

<뛰기에서 부르는 노래>

뛰어보세 뛰어보세 / 강강술래 윽신윽신 뛰어나 보세 / 강강술래
얕은 마당 깊어지고 / 강강술래 깊은 마당 얕아나지게 / 강강술래

4) 멍석 말기와 풀기 : 노래에 맞추어 아래 그림과 같은 방향으로 멍석을 말았다 푼다. 돌아나올 때도 처음 말기 시작한 사람이 방향을 달리하면 안되고, 계속 같은 방향으로 말았다가 앞사람을 따라 풀어져 나와야 한다.

<멍석 말기와 풀기에서 부르는 노래>

몰자몰자 덕석몰자 // 비 온다 덕석몰자
풀자풀자 덕석풀자 // 볕 난다 덕석풀자

5) 문지기놀이 : 멍석말기와 풀기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문을 만들어 나가는 문지기놀이가 이어진다. 맨 앞사람과 다음 사람이 문을 만들면, 이어져 나오는 사람이 차례로 문을 만들어 나간다.

<문지기놀이에서 부르는 노래>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 주소 / 열쇠 없어 못 열겠네
어 떤 대문에 들어갈까 ― / 동대문으로 들어가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 주소 / 열쇠 없어 못 열겠네
어 떤 대문에 들어갈까 ― / 남대문으로 들어가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 주소 / 열쇠 없어 못 열겠네
어 떤 대문에 들어갈까 ― / 서대문으로 들어가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 주소 / 덜커덩떵 열렸네

6) 청어엮기 : 노래에 맞추어 청어를 엮는다. 청어 엮는 방법은 아래와 같은데, 보통 여섯 명 내지 일곱 명이 한 모둠이 되어 청어를 엮는다.

7) 청어풀기 : 청어를 다 엮은 다음 마찬가지로 노래에 맞추어 청어를 푼다.

<청어엮기와 청어풀기 노래>

청청 청어 엮자 위도 군산 청어 엮자
청청 청어 풀자 위도 군산 청어 풀자

8) 고사리끊기 : 노래에 맞추어 고사리를 끊는다. 끊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9) 기와밟기 : 앞사람의 허리에 허리를 잡고 고개를 숙인 채 길게 늘어선다. 그러면 한 사람이 그 위에 올라가 등을 밟고 올라서고 옆에서 두 명이 양손을 잡아 떨어지지 않도록 보조한다. 이때 노래의 박자에 맞춰 천천히 걷는다.

<기와밟기 노래>

어딧골 기완가 전라도 기왈세 // 몇 닷 냥 쳤는가 스물닷 냥 쳤네

10) 남생이놀이 : 남생이놀이는 모두 원이 된 상태에서 자리에 앉는다. 앞소리가 나와서 놀 사람들을 부르면 흥겹게 원 안으로 나온다. 이때 점잖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생이처럼 뒤뚱뒤뚱 까불까불 나오고, 나머지는 뒷소리로 “촐레촐레가 잘 논다”라고 노래한다.

 

 

 

강강술래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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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다. 그러나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임진왜란(壬辰倭亂)과의 연관설이고, 다른 하나는 고대의 제사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전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침략해 오는 왜적에게 우리 군사가 많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부녀자들을 동원하여 남장시키고 손과 손을 마주잡고 둥그렇게 원을 만들며 춤추게 했더니, 이를 본 왜군들이 질겁하여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 설은 학자들에 의해 점차 부정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교과서에는 이렇게 소개되고 있다. 후자의 경우는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濊)의 무천(舞天) 등에서 행해지는 제사의식에서 비롯되었거나, 만월제의(滿月祭儀)에서 나온 놀이라는 것과, 마한(馬韓) 때부터 내려오는 달맞이와 수확의례의 농경적인 집단가무 등 다양한 설이 있다. 강강술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문헌은, 조선 말기 정만조(鄭萬朝)가 쓴《은파유필》이 있다. “높고 낮은 소리를 서로 주고받으며 느릿느릿 돌고 돈다. 한동안 섰다가 이리저리 돌아가네. 젊은 여인들의 마음에는 사내 오길 기다리네. 강강술래를 하니 때맞추어 역시 사내들이 찾아오네. 이날 밤 집집마다 여자들이 두루 모여서 달을 밟으며 노래하는데, 한 여성이 선창을 하면 여러 여성들이 느릿느릿 소리를 받기를 강강술래라 한다.” 강강술래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 한자 기원설로, ‘强羌水越來(강강수월래)’ 즉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으로 풀이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왜적을 경계하라는 뜻의 적개심을 높이려는 구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억지로 한자를 꿰어 맞췄다는 견해가 많다. 다른 설은 우리말 기원설로, 강강술래의 ‘강’은 원(圓)을 뜻하고, ‘술래’는 수레[輪]를 의미하는 말로, 둥글고 둥글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국한문 혼합기원설로, ‘강강’은 우리말 원(둥근), ‘술래’는 순유(巡遊)·순라(巡羅)에서 나왔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전라도 남해안지방의 사투리 ‘강강’은 둥근 원을 만들고 돈다는 뜻이며, ‘술래’는 도적을 잡는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기원과 어원에 대하여 뚜렷이 밝혀진 바가 없고, 다만 추측될 따름이다. 다만 강강술래가 먼 옛날부터 집단의 대동적인 축제에서 시작된 것으로, 주로 분포지역이 해안지방인 점에서 주로 남자들은 오랫동안 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여성들이 마을에 남아 있으면서 달 밝은 밤이면 풍농(豊農)과 만선(滿船)을 기원하는 공동굿 형식으로 발달되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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