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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0. 12. 17:15자유 게시판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38) 결혼 이주여성이 바라본 한국사회



아시아계 이주여성들이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한 강좌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이주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어 습득에 앞서 서로에 대한 민족적·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소통은 없고 동정뿐 ‘속울음’-

‘외국인 100만명 시대’를 맞아 외국인 이주자가 일상의 일부를 차지하게 되면서 이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인식도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한국사회의 다민족·다문화 지향성에 대한 조사 연구’에서도 외국인 이주자에 대해 한국인들은 비교적 개방적이며 동료나 이웃, 친구로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관용적인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태도가 피상적 수준의 선의(善意)를 넘어서 실제 외국인 이주자와의 대면 속에서 실천으로 연결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문점이 남아 있다. 한국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다양한 이주자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며 한국인들과 공적, 사적으로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을 것으로 기대되는 결혼이주여성, 특히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동아시아 개도국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의 경험을 보면 이러한 의문은 더욱 커진다.

대부분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언어와 일상생활 방식의 차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의 어려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나 일상생활의 문제는 한국생활 경험과 자신의 노력에 따라 해결되어 가는 기미를 보이지만, 시간의 흐름과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문제가 버티고 있다. 일상생활 여기저기에서 마주치는 한국인들이 자신을 향해 내보이는 곱지 않은 시선이 바로 그러한 문제이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그것도 못 사는 나라 출신이기 때문에 ‘무지하고 무능한’ 존재로 취급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게다가 ‘팔려오다시피 결혼해’ ‘매 맞고 사는’ ‘불쌍한’ 사람, ‘돈 때문에 결혼해’ ‘이혼도 쉽게 할’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식의 선입견으로 자신에게 동정과 차별이 뒤섞인 태도를 내보이는 이들을 대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인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란 결코 쉽지 않으며, 결국 10년 넘게 한국인들 속에서 살면서도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거나 ‘목욕탕이나 노래방에 같이 갈 만한’ 친구조차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문화만을 강조할 필요는 없으며 외국인 이주자의 모국어나 출신 문화도 존중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지만, 정작 결혼이주여성들 주위에는 자신의 모국어를 ‘시끄러운 소리’라고 폄훼하거나 정확한 한국어 구사만을 강조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관계와 역할 분담 등의 불합리함을 지적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면 돌아오는 것은 ‘여성은 집안일에 충실하고 바깥일은 남성이 하는 것이 한국문화’라는 단정적 목소리뿐이다.

지금도 시어머니, 남편(은) 태국 말 전화 통화 오래하는 거 싫어해요. 친구들한테 전화하는 거. 저 쓰는 거도 뭐라 하고 그 쪽에서 해도 뭐라 하고. 태국 말 쓰니까. 어머니는 내가 전화에 태국 말을 썼더니 밖으로 나가요. 원래 앉아 있었는데 방안에. 태국말로 쓰면 그냥 나가요. 시끄러운 소리라고 하고. (싸오 - 가명, 태국 출신, 청주시 거주, 한국 생활 6년)

한국에서는 남자, 여자가 분명히 구분되어 있어서 남편은 밖에 나가서 일하고 대부분 결혼한 부인은 집에만 있으면서 집안 돌봐요. 일하지 않고. 태국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남편과 부인이 함께 밖에서 일하는데. (나도) 남편이랑 이야기했었는데 일하고 싶다고, 남편은 “한국에서 여자는 집안일 하고 남자가 일하는 거”라고 했어요… 교회에서(도) 그랬어요. 한국에서는 집안일은 모두 부인이 하고 남자는 안한다고. 남자는 나가서 일한다고 가르쳤어요. (드언-가명, 태국 출신, 대전시 거주, 한국 생활 5년)

자신을 향한 요구에 대해 결혼이주여성들은 반복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자신들의 문제 제기와 요구에 귀 기울이고 함께 대안을 찾아갈 이들을 찾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물론 적지 않은 이들이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나름대로 도와주고 있지만 이해와 노력은 자신이 겪는 어려움 전반, 자신이 기대하는 삶과 가족 관계, 사회 전반의 모습을 향해 있기보다는 그 가운데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가족들은 끊임없이 집안에서 부인으로서 일상적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한국인 아이의 양육자로서 무리 없이 역할을 해나가며 며느리로서 시댁에 충실한 존재로서의 면모를 갖춰가도록 강조한다. 주위의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한국어 교육과 한국요리강습, 전통예절 교육 등을 시행하면서 음으로 양으로 이러한 측면에 부응하고 있다.

이처럼 결혼이주여성들이 주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요구 가운데 몇몇 측면, 특히 가내 역할 수행을 중심으로 한 일부 측면에 눈과 귀를 집중시키고 있다. 이에 반해, 역할 분담에 대한 문제 제기나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동 욕구와 같은 그 이외의 목소리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단지 가족이나 몇몇 관련자들에게 국한된 문제는 아닌 듯하다. 한국사회 전반에서도 이와 맞닿아 있는 태도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동아시아 개도국 출신 결혼이주여성은 다소 부정적인 존재로 한국사회에 등장했다. 1990년대 초 한국계 중국인 여성의 사기결혼이 사회적 논란거리가 된 것을 비롯해 90년대 중반부터는 특정 종교단체를 통해, 보다 최근에는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결혼한 여성들을 자신의 삶을 꾸려 가는 데 있어 최소한의 권한조차 결여한 ‘무기력한’ 존재, 애정 없이 결혼해 불행한 삶을 살 것이 자명한 ‘불쌍한’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현재 결혼이주여성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지배적 시각은 이들을 피해자·약자로 보는 담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이와 동시에 ‘비정상적인’ 결혼 과정을 극복하고서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만들어낸 여성에게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정상적인’ 가족관계란 어떠한 모습인지, 이를 구현하기 위해 가족원들, 특히 여성과 남성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의 가족, 나아가 ‘한국사회’ 전반에 변화를 요구하는 결혼이주여성의 또 다른 모습은 무대 뒤에 가려져 있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분출하고 관련 정책이 봇물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이들은 아직 보호와 교육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질 뿐 사회 곳곳에서 동료이자 친구로서 함께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면서 미래를 일궈가는 모습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여성들의 한국어 수준이 향상되면 한국사회의 완벽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상당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들 역시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국어 이해수준이 높아질수록 문제 의식이 심화되어 가는 것을 보면 단지 기술적 차원의 언어 문제로 귀결시키기는 힘든 것으로 보인다. 언어의 문제 이면에는 이들이 한국보다 경제개발 수준이 뒤처진 국가 출신이라는 사실과 문화적 차이라는 빙산이 존재한다. 물론 결혼이주여성과 함께 갑자기 한국사회에 개도국 출신자들이 등장하고 문화적 차이가 생겨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과 함께 차이의 스펙트럼이 확대되고 서로 다른 민족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일상을 공유하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그간 민족적, 문화적 차이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이를 다룰 수 있는 기제를 준비하지 못했던 한국사회 앞에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던져진 것이다.

흔히 문화는 프리즘에 비유된다. 이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보고 상대를 평가하며 자신의 행동과 사고의 지향을 형성하고 정당화해 나간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런데 이 프리즘은 그것을 끼고 있는 인간이 그 사실을 망각할 때, 자신이 낀 것과 다른 프리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때 갈등의 불씨로 자라난다. 각자 자신의 틀을 절대시하면서 그 기준에 따라 상대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아시아 개도국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처럼 상대가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것으로 판정된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필요한 것은 각자가 끼고 있던 프리즘을 잠시 벗어두고 상대방의 프리즘을 써보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나아가 프리즘의 차이를 인정하고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에게 알맞은 새로운 프리즘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더 없이 이상적일 것이다.

요사이 한국사회에는 가히 ‘열풍’이라 할 만큼 ‘다문화사회’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폭발적으로 일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현재의 열풍을 통해 다문화사회로의 변화에 적합한 사회관계의 질서가 정착되어 갈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 피상적 모토로서 ‘다문화사회’가 반복적으로 강조될 뿐 정작 서로 다른 민족적·문화적 배경을 지닌 시민들이 어떻게 생활 곳곳에서 만나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앞으로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지,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개인적·사회적 실천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열풍의 강도만큼 진척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족적·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생산적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사회질서를 향한 첫걸음은 지금 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나에게는 생활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동료이자 친구인 결혼이주여성이 있는가? 나는 이들의 다양한 문제 제기와 요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나는 이들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응답하며 함께 미래를 열어갈 능력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 결혼이주여성들은 바로 이러한 점을 자문해보고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이제 나의 차례이다.

〈김이선|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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