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의 문화재

2007. 10. 8. 17:33나의고향 횡성소식

 
 

화성정

이 정자는 갑천면 구방리에서 부동리 방향쪽 우측 강변 벼랑위에 위치하고 있다. 화성정은 4개 부락 주민(부동리, 구방리, 중금리,화전리)과 노인회원등 기금을 모아 옛 복성정터에 건립한 정자 이다. 화성정은 400여년전 중금리 대문안골에 살았던 진앙이란 사람이 세웠다는 복성정의 옛터이다. 1976년 중금리, 부동리, 화전리, 구방리의 수하 4개리 화성친목회원 23명이 모은 기금과 4개
부락 주민의 협찬금 그리고 당시 대의원 이었던 유효준씨의 희사와 협조를 받아 횡성 운암정의 모본을 떠다 6개월여의 공기를 거쳐 건립한 정자로 망향의 동산에 당시의 건립취지와 정황등을 소상히 발췌정리하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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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석계곡

서원면 압곡리 물골 냇가에 조선조 중엽 취석 최문발 선생이 지은 것으로서 지금은 돌에 새긴 바둑판과 취석이란 두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구곡한천이 흐른다는 섬강의 상류인 용곡천을 따라 1.5km 쯤 내려가면 웅장한 산세가 겹겹이 둘러싸이고 기암괴석이 솟은 계곡에 당도하면 갑자기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명승지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취석정이다.
예부터 수맣은 시인과 묵객이 잔을 기울여 인생을 구가한 곳이기도 하지만 애수에 어린 전설도 가지가지 광대소에 잠겨져 있고, 명사가 마산을 왕래하는데 급경사를 피하기 위하여 냈다는 아홉사리고개는 한층 그 당시의 선망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자는 언제 지었는지 알길이 없으나, 『취석공시집』의 서문을 보면 1953년 7월 3일 이전에 지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담한 정자(취석정)와 함께 계곡을 굽어보고 있는 '취석시비'에 새겨진 이 글귀가 이곳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취석계곡 인근의 서원초등학교 압곡분교 일원은 천연기념물 248호인 백로(우리말로 해오라기)와 왜가리 서식지이기도 하다. 해마다 5월 초순에 해오라기와 외가리가 찾아와서 여름을 보내는 것이다. 압곡분교 어린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새들을 돌보고 치료하기도 하면서 생태계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서, 순히 눈요기삼아 이곳을 찾은 탐방객들에게 자연 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보광사

보광사는 1934년 강대희에 의해 건립된 사찰로서 당시에는 요사 1동뿐이었으나 이후 보문정(1949년), 삼성각(1961년), 동별당(1978년)등이 차례로 건립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찰명도 처음에는 남산사라 하였으나 1961년 보광사로 개칭되었다.
현재 입구에는 부도 2기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부도들은 보광사를 중창한 1949년에 동북쪽으로 약 1km 지점에 위치한 법흥사지에서 옮겨 온 것이다.

 

태풍루

옛날 원님이 군 정사를 보던 곳

3.1공원 밑 군청자리에 1789년인 정조 22년 당시 정래승 현감이 국태민안과 풍년을 기원하고자 건립햇다. 그후 6.25한국전쟁 때 태풍루는 완전 붕괴되었고, 현재의 태풍루는 1992년에 복원했다.

 

태기산성

진한의 종말을 지켜본 말없는 성벽과 패망의 갖가지 사화가 남아 있는 곳

해발 750~1,000m 정도 되는 고지에 축성된 이성은 1,500여년 전 진한의 태기왕이 신라 박혁거세에게 패하여 쫓겨 덕고산(태기산)에 입산하여 성을 쌓고 방위하였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주변에는 이와 관련된 지명이나전설이 많다.주위 삼면은 산세가 급하고 낭떠러지가 많아 천연적 은폐물의 역할을 하는 요세의 조건을 갖춘 산세를 지녔다.태기왕은 이런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육을 다짐하지만 자연림을 위장하고 정상을 공격해 돌어오는 신라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한의 패망과 관련 갖가지 사화를 남긴 태기산성은 덕고산을 태기산으로 부르게 한 산성유적인데 원한과 비애로 종말을 한 곳이다.

 

봉복사

횡성군에 있는 절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규모를 자랑

횡성군내 현존하고 있는 사찰 중에 가장 유서가 깊은 봉복사는 신라 선덕여왕 16년인 647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이·택·상 삼위를 봉안한 절로서 건축물이 웅장하고 아름답다. 불교의 3대 본산인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월정사에 소속된 미사이다. 봉복사가 자리하고 있는 주위는 사방을 산악이 싸고 돌아 아늑한 따스함이 감돌아 곳곳에 소를 이루어 각종 물고기가 서식하기도 하는 공기가 맑고 바람소리도 신비하게 들리는 산자수명한 절경을 이루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절의 부속건물이 모두 파괴되고 지금은 법당과 부속건물 1동만이 남아 그 역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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