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다역을 소화하며 밝게 살아가는 시골 아줌마 이종란의 전원일기

2007. 10. 29. 08:31나의고향 횡성소식

일인다역을 소화하며 밝게 살아가는 시골 아줌마 이종란의 전원일기
“시골 아줌마가 농사는 물론이고 축구선수에 사물놀이, 벙사활동, 글까지 쓰니 신기한가 봐요”

1만 평의 논농사와 40여 두의 소를 키우고 우유를 짜는 일은 만만치 않다. 게다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법을 고집하니 일이 더욱 고될 수밖에. 농한기에는 자리 펴고 휴식을 즐겨도 좋으련만 운동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비고, 꽹과리로 시골의 정막을 깨워 한 줄 필설로 그 마음을 노래하는 이가 있으니, 어찌 보면 괴짜일 수 있는 시골 아줌마 이종란씨의 사는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의 매너리즘을 돌아본다. 

시골 아줌마의 유별난 인생살이
농촌의 정막을 깨우는 올 라운드 플레이어

만만한 게 홍어 ×라는 말이 있다.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 넋두리는 메아리가 되고 이내 한숨이 되어 허탈한 심경을 자극한다. 세상살이가 고달파지면서 소시민의 ‘귀농’ 열의는 술자리 안주 이상이다. 그 노스탤지어의 꿈과 파라다이스에 대한 환상은 ‘딱 거기까지’. 농촌의 삶 역시 여유자작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고즈넉한 하늘만큼이나 할 일이 무궁하고, 너른 벌판 고단함이 펼쳐지게 마련. 소망하는 그곳은 낙원이 아니라 ‘체험 삶의 현장’ 바로 그것이다. 땅을 부쳐 먹는 사람의 고단함 만큼의 대가로 삶을 잇는 것이기에 그만큼 소중하다. 뻥튀기가 없고 모략질이 없으며 로또 대박의 꿈도 없다. 일한 만큼 노력한 만큼, 콩 심은데 콩만 나니, 일하지 않는 자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부풀리기에 익숙한 도시민으로서는 그들의 삶이 갑갑할 밖에. 그러나 사는 곳이 시골이라고 다를 바는 없다.

강원도 횡성! 십수 년 전 구불거리던 길은 신작로를 넘어 자동차 전용도로로 탈바꿈했다. 도농 간의 경계는 심적 경계일 뿐, 공간적 접근성은 나라의 경제 규모만큼 커진 것이 사실. 산허리를 감아 돌고 산정을 뛰어넘는다지만, 초랭이 버선발이 아니기에 한달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골 아줌마 하나 보자고 찾아온 길이지만 과속의 자동차 안에서 늦가을 맞바람을 맞아도 즐거운 것은 그녀의 삶 속에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횡성 시내를 지나 공근면 봉화마을의 이종란씨(36)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지아비(정규철·45)의 아내다. 그런 탓에 남편과 더불어 유기농 농사꾼으로 불리고 젖소를 키우는 아낙이란 말도 옳다. 그러나 논이 있어 농사를 짓고 젖소가 있어 소를 키우고 젖을 짜는 그러저러한 농군이 아니다. 농사도 그렇게 손이 많이 간다는 유기농법의 신봉자다.

한살림공동체의 출발도 이 마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 지역 농협의 이사를 맡을 정도로 농촌 사회의 활동 역량이 왕성하다. 여기에 공연 섭외가 곧잘 들어오는 사물놀이패 상쇠이며 실력을 인정받은 여자 축구선수이기도 하다. 게다가 틈틈이 봉사활동을 쉬지 않는 자원봉사 활동가이며 시골의 삶을 각종 매체에 기고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1인 9역을 거뜬히 소화해내는 생활이 여간 궁금하지 않다. 도시의 어느 주부보다 바쁜 삶을 활기차게 열어가는 사람인 만큼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도 활기찰 밖에.

시골 아줌마의 24시간 따라잡기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농사일에 젖소 키우기, 그리고…

마을로 접어들면서 한입 가득 침이 고여 들었다. 마침 김장을 한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내 동네 아줌마들이 어울려 담그는 김장 품앗이에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김치 속에 배추쌈으로 막걸리를 한잔 하려오. 아님, 맥주를 줄까! 맞아, 김치쌈에는 소주가 제격이지.”
대답도 할 새 없이 시뻘건 맛을 들인 김치 속에 단단히 버무려진 굴을 하나 넣고 듬직한 김치쌈에 삶은 돼지고기를 얹은 것이 주책없이 벌어진 입 속으로 들어온다. 집에 바로 붙어 있는 축사에서 40여 마리의 젖소가 진을 치고 우리를 쳐다보고, 몇 마리의 풀어진 강아지 떼가 ‘떡고물’을 바라며 연신 꼬리를 흔들어낸다. 보여지는 풍경이며 사람들의 어울림이 우리가 생각하는 시골 모습 그대로 접사된다. 축사가 있어선지 익숙하지 않은 가축 분뇨 냄새가 코로 연신 들어오는 것을 보니 이곳이 시골임에 분명하다.

“취재 온다고 우리 여보가 한쪽 축사의 오물은 치웠는데, 아직 다른쪽을 치우지 못해서 여전히 냄새가 날 거예요. 오늘이라도 정리를 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마침 내일 비가 온다고 해서 논의 볏짚을 묶어두어야 하는 통해 정리도 못하고… 논에 주는 퇴비는 수확이 끝난 후에 탈곡을 하고 난 볏짚을 깔아 썩인 다음 이듬해 봄에 갈아엎어 퇴비로 활용하는데, 논에서 자란 볏짚을 그대로 거름으로 주기 때문에 땅 힘을 유지하는 데는 볏짚이 최고거든요. 그 일부를 사료용으로 묶어두고요. 나는 김장 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축사 냄새가 걸렸던지, 애써 설명하는 모습이 오히려 듣는 이가 미안할 정도다. 손을 대면 트랙터로 세 번을 훑어내야 할 정도로 축사 오물 청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논농사에 젖소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손이 모자라 보인다.

사실 유기농법이란 것이 말은 좋아도 짓는 사람은 죽을 맛이다. 그만큼 농사꾼으로서 사명감과 고집이 있어야 한다. 이 또한 마을의 내력과 다르지 않다. 조선 시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정종영 공(公)이 뿌리(根)를 내리고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공근면은 그 내력만큼 유기 농사를 선비 정신으로 짓고 있는 셈이다.

그 양도 만만치 않다. 1985년부터 현재까지 젖소 15두, 육성우 15두, 송아지 10두, 한우 4두를 키우고 있으며, 수도작 1만 평 중 오리농법으로 약 4천5백평), 우렁이농법으로 약 9백50평, 흑미 약 9백평, 일반 농법으로 약 4천 평을 짓고 있다. 밭 작물로는 유기농 감자와 찰옥수수를 약 1천 평 하고 있고, 4천 평은 젖소 사료용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다. 감자를 재배하고 난 뒤 후작으로 찰옥수수를 재배한다. 양도 양이려니와 논농사만 해도 모내기를 하고 난 다음 오리를 방사해 제초제와 방제 문제를 해결하여 농약 없이 쌀농사를 지으니 일은 언제나 산더미다.

“그럼 그 오리들은 다 어찌 하나요.”
오리구이라도 맛볼 수 있나 하는 요량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잡아 키우려면 만만치 않은 일이기에 물었다.
“여기 사람들이 말하기를 오리는 너구리밥이라고 불러요. 시간이 지나면 너구리들이 하나 둘 물고 가서 한철 농사가 마무리될 즈음이면 알아서 정리가 되죠. 또 그렇게 오래 자란 오리는 사람들이 먹기엔 너무 질기기도 하고요.”

이렇게 오리는 매년 어린 것을 사다가 방사해서 키우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렁이농법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우렁이농법은 왕우렁이를 이용해 벼농사를 짓는 농법인데, 왕우렁이는 물속에서만 살고, 주로 연한 풀을 먹는다. 바로 이런 특성을 이용해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우렁이를 뿌릴 수는 없다. 논에서 잡초 방제 효과를 거두려면 잡초가 어릴 때 왕우렁이를 방사해야 한다. 왕우렁이가 먹을 것이 없으면 벼를 먹게 되므로 시기 선택을 잘 해야 한다고. 그런 탓에 모내기 이후 15일 정도 경과한 다음 논바닥에 풀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뿌려줘야 한다. 벼 뿌리도 충분히 활착된 때라 제초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있단다. 시기 선택이 중요한 것. 젖소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루 두 번 착유를 해야 한다. 새벽 5시 30분과 오후 5시경. 상황에 따라 부부가 나누어 젖을 짠다.

유기농 감자 재배는 종자 선택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씨감자는 병해충에 약하기 때문에 대관령의 원종관리소에서 직접 고랭지감자 종자를 구입해 심는다. 고랭지 감자는 병해충에 강하기 때문에 유기재배가 용이하다. 일반 감자보다 알은 작지만 매끄럽고 반질반질하며 맛이 뛰어나다고. 농사를 지을 때도 땅 힘을 좋게 하기 위해 발효 퇴비를 많이 사용하고 병해충 방제를 위해 농약을 대신해 목초액을 사용한다. 기심이라고 굼벵이처럼 생긴 벌레의 기어다닌 흔적을 쭈그린 자세로 좇아 일일이 손으로 잡아 없애면서 애지중지 재배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덕에 농관원(국립농산물 품질 관리원)에서 유기농업 품질인증마크를 받아서 한살림 공동체와 계약 재배한 후 도시의 고객들에게 100% 출하되고 있다고. 

시골 아줌마로 산 애환
층층시하에서 사랑을 배웠다
“결혼한 지 14년이 되었고, 이런 일들이 익숙하지만 시집온 첫해에는 시조부모까지 계시는 층층시하라 겁부터 났어요. 하지만 주변의 형님들이 도와주고 다독여주어 열심히 생활할 수 있었죠. 시부모님도 너무 감사한데 더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요.”

지난 91년에 결혼을 했고 남편과의 나이 차이는 9년이나 된다. 말인즉, “나 없으면 죽겠다”는 남편의 말에 필이 꽂혔다고. 그러나 당시 남편의 집안은 며느리들이 다 두려워하는 맏이에 층층시하였다. 결혼 후 대소사도 많이 치렀다. 결혼한 지 4년 만에 시할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2년 뒤에 시어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달리 했다. 그 뒤론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시할아버지한테 치매가 와서 손자며느리는 물론 손자도 못 알아 볼 정도였다고. 그렇게 3년 정도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20대 초반에 시집온 새댁에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셈이다.

그뒤로는 시아버지가 워낙 허리가 안 좋으신다 협심증에 당뇨, 고혈압 등으로 고생을 해서 걸음을 단 세 발자국도 못 옮기셨다. 전동 휠체어를 사드렸어도 오도 가도 못할 때는 종란씨가 직접 업고 다녔다고.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절 딸 이상으로 대해주셨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심장병으로 돌아가셔서 너무 안타까워요. 아이들에게도 할아버지란는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고요. 아버님 살아생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이리 저리 모시고 다니며 정도 많이 키웠죠.”

고된 일상이었지만 정이 넘치는 가족과 이웃으로 인해 힘을 얻었다. 김장을 담그면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 몫까지 챙겨 놓는 마음에서 때묻지 않은 그녀의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강산이 변한다는십수년간 어려운 일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특히나 우유 파동이 났을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정성껏 짜서 넘긴 우유 값은 들어오지 않고 돈이 없으니 사료 값은 밀려갔으니 사면초가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했다.

봉사에 눈을 뜬 것도 이런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였다. 독거 노인을 챙기고 옥수수 튀기를 만들어 판 돈으로 기금을 적립하고, 학자금 지원 등 목돈이 꼭 필요한 이웃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녀의 봉사활동은 벌써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마음을 맞출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활동으로 팀워크를 다졌기 때문이다. 사물놀이를 시작한 지는 벌써 4년이 지났다. 아줌마들이 쳐대는 흥은 이미 지역 사회에서는 알려질 대로 알려져 공연 요청을 물리쳐야 할 정도. 아줌마들을 모아 축구를 시작한 것도 3년 전. 각종 대회에서 순위권 안에 들고 있는 축구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커진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남자들이 군대 얘기하는 것과 축구 얘기하는 것이고, 질색하는 것이 군대에서 축구 얘기를 하는 것이라는데, 종란씨의 경우는 완전히 그 반대다.

“공근면 여자 축구팀이 최고였는데, 요즘에는 좀 밀려요. 요즘 농촌에 중국 동포들이 시집을 많이 왔잖아요. 그런데 글쎄 중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여자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친다나 봐요. 근처 마을의 축구팀에 중국 동포가 대여섯 명이 있는데,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속상한 일이죠.”

사실 종란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와 스케이트 선수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고, 남편 종철씨 역시 역도로 전국대회를 제패한 전력을 자랑해 농부 이전에 스포츠맨 부부이기도 하다. 이런 탓인지 공부 잘한다는 딸 연희(13) 역시 초등학교 시절 투포환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단다. 아들인 윤상(10)은 엄마인 종란씨를 닮아 몸도 듬직하다.

“원래 몸이 튼튼하지는 않았어요. 저도 여자라고 다이어트를 해봤죠. 한 17kg까지 빼봤던 것 같아요. 정말 얼굴이 반쪽이었거든요. 하지만 할 일 많은 농촌 생활에 몸매가 대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힘 쓰는 일도 해야 하니 어느 정도 몸집이 있는 게 도움도 되고요. 지금 이 몸매가 되니 일하는 것도 거칠 게 없고 보기도 좋잖아요.”

착유를 위해 젖소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폼이 위세가 당당하다. 촬영을 위해 우사로 들어간 사진기자가 커다란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젖소에 기겁을 해 뛰쳐나왔으니…. 그러나 종란씨는 여전히 착유에 골몰한다. 볏집을 묶으러 나간 남편을 대신한 그녀의 우유 짜기는 2시간여 계속되었다.

살기 편한 세상, 스스로 몸을 놀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에 봉사하는 모습은 아름다움이다. 결국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녀의 인생에 찬사를!